[최영원 교육칼럼] 소통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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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원 교육칼럼] 소통의 이야기
  • 김해정
  • 승인 2019.04.19 16: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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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 형편없이 추한 사람이 있었다. 배운 것도 별로 없고 말도 잘하지 못했다. 재물도 많지 않아 겨우 먹고 살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다른 사람과 만나면 남보다 말을 먼저 하지 않았다. 그는 다른 사람이 말하면 웃으며 그저 맞장구를 칠뿐이다. 이 소문이 온 나라에 번져 당시 위나라 애공도 알게 되어 애공이 그를 만났는데 소문대로 추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한 달을 같이 지낸 애공은 그에게 온통 마음을 빼앗겼다. 일 년이 지나자 그에게 나라 일까지 맡기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 말을 들은 그는 홀연히 사라지고 말았다.’ 「장자」 덕충부에 나오는 애태타 이야기이다.  그는 권력도 학력도 재력도 거기에다 외모도 갖추지 못한 사람이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현혹 시키는 교언영색 즉 듣기 좋은 말로 환심을 사려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와 함께 지내본 사람은 남자든 여자든 그의 곁을 떠나지 않는 것이다. 심지어 여자들은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기보다는 그의 첩이 되기를 원했다. 지위고하, 남녀를 불문하고 수많은 사람 들이 그를 따르고 좋아한 것이다. 힘도 없고 돈도 없고 거기에다 외모도 받쳐주지 못한 사람을 지금으로 말로 하면 ‘별 볼 일 없는 사람’인데 어떤 매력이 있었을까?

몇 가지 이유를 찾아보자. 먼저 시대적 상황이다. 당시는 피비린내가 가장 진동했을 전국시대였다. 현실은 먹고 먹히는 살벌함 그 자체였다. 오랜 전쟁으로 민심은 피폐할 대로 피폐해졌고 백성들의 생활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자식 잃은 부모, 부모를 잃은 자식의 아픔, 전쟁으로 재산을 잃은 쓰라림, 분노와 슬픔은 극에 달했으며 삶에 대한 환멸과 시대의 원망은 모두의 가슴에 응어리져 있었을 것이다. 불안과 배신, 그리고 전쟁의 참화 속에 그 어떤 믿음과 신뢰는 있을 수 없었고,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불신과 반목의 사회였을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나타내지 않으면 인정받을 수 없었다. 남의 말을 듣기보다는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제안하고 관철 시켜야했던 백가쟁명의 시대였다. 자신의 정책과 이론을 세상에 던져 놓고 서로가 경쟁했던 시대였다. 이런 삭막하고 각박한 현실에서 누군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자신의 말에 긍정하고 공감해주는 사람은 있을 수 없었다. 자신의 생각과 이념만이 옳고 자신의 힘과 남보다 뛰어난 재능만이 다른 사람을 압도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들어주는 것이다. 그는 어떤 이권이나 청탁할 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재산도 별로 없고 권세도 없고 외모는 추하기까지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좋아하게 되고 만나면 헤어지기를 싫어했다.

그는 만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 주었고 사람들은 그에게 자신의 사연을 말하기 시작했던 것 이다. 어떤 말을 하더라도 그 말을 그대로 들어주고 인정해주었다. 말함으로써 속이 후련해졌다. 자신의 아픔을 말한 사람은 안식가 되기도 하고 피난처가 되기도 했다. 그를 만나고 나면 자신이 품고 있던 응어리를 풀 수 있게 된 것이다.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그동안 말하지 못하고 가슴속에만 응어리진 사연을 말할 수 있어 응어리가 풀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어떤 말을 해도 어떤 불평을 해도 그는 묵묵히 그 말을 들어 주었다. 이런 과정에서 그의 신뢰는 쌓여 가고 이것이 확실한 믿음을 주었을 것이다. 상대방이 한 말에 대해서는 철저한 비밀을 지켜 주었을 것이다.

애공 역시 당대의 군주였지만 불안과 불신은 어느 누구 보다 더 심하였을 것이다. 얼마나 불신이 심했으면 군주 자신이 직접 하찮은 소문까지 직접 확인해야 했을까.

군주인 애공은 애태타에 대한 소문을 그대로 믿을 수 없었을 것이다. 세상에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데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르고 그를 좋아한다는 것은 권력을 가진 군주로서는 더구나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의 용모를 직접 확인했고 가까이서 지켜보게 된 것이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면서 자신이 오히려 그를 신뢰하게 된 것이다. 거기에다가 나랏일까지 맡겨야겠다고 생각했다는 것을 보면 그에 대한 믿음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다. 

 애공의 입장에서 보면 진정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 애태타 뿐이었다. 애공은 아무 거리낌 없이 들어준 그에게 무한 신뢰를 했을 것이고, 자기를 대신해서 국가의 일을 맡겨도 된다고 믿게 된 것이다. 애태타는 어떤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던 것도 아니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조건 없이 진지하게 들어주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상대방은 그에게 국사를 맡겨야겠다고 결정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자기 말을 하기 보다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라는 것이 아닐까.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지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그 어떤 것 보다 가장 큰 힘이라는 것,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것은 상대방을 인정하고 배려한다는 것, 그리고 말을 하는 사람은 들어 주는 사람을 들어 주는 만큼 마음과 아량을 가지고 있다는 평가를 한다는 것이다.

듣는다는 것은 어떤 특별한 능력이나 재능보다 더 중요한 소통의 길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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