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덕의 안경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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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덕의 안경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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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4.17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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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사발에 대한 짧은 기억

찻사발에 대한 짧은 기억

지난 가을 J선배와 인사동길을 걷다가 쇼윈도에 진열된 찻사발을 보고
어! 김정호선생 작품이네 하고 혼잣말을 했다.
선배는 그걸 첫눈에 보고 어찌 아남? 하며 묻는다.
저 작품 제가 소장하고 있습니다. 라고 했더니 조금 놀라는 기색이다.

이 찻사발은 소설가 L로부터 받은 선물이다.
중요무형문화재 105호 사기장으로 지정되신
백산 김정호선생의 작품이다.

맨발로 흙을 밟고 물레로 사발을 빗어 장작 가마에
소나무만 넣어 꼬박 12시간 동안 1200도를 유지하며 구워낸 사발이다.
입부분이 일본식 우동그릇만하고 몸통은 상아색이 감돈다.
몸통을 받치고 있는 굽은 유약이 미처 마르지 못 한 채
둥글게 엉켜 눈물방울 같은 묘한 질감이 도드라진다.

겉과 안쪽은 매끄럽고 몸통은 부드럽게 물레 자국이 나있다.
물레를 돌리며 무심한 눈빛으로
사발을 빗었을 도공의 숨결이 느껴진다.
찻사발의 맨 아래쪽에 해당하는 고임터를 보노라면
밝은 살구색감이 도는 것이 소박하면서 따뜻한 느낌이 전해진다.

이 찻사발은 말차를 마실 때 사용하지만
주로 감상용이다.
손끝으로 몸통(울)을 튕겨보면
도기나 자기의 맑고 청아한 소리가 난다.
다탁에 앉아서 팔을 옆구리에 가지런히 붙이고
두 손으로 입(전)부분과 몸통(울) 부분과 굽까지 감싸서 잡아보면
손으로 전해오는 청량감이 정신까지 맑게 하는 느낌이다. 

수년전 L선배의 집에 초대받아
보이차를 처음 접하고
무언가 그윽하고 고즈넉한 느낌에 끌려 마시기 시작한 차 생활은
문자 그대로 일상다반사가 되었다.
언젠가 그 선배를 만난 자리에서 몇 년 동안 차를 마셔보니
잡념이나 탐욕 같은 게 줄어드는 것 같고
마음이 참 고요해지는 것 같다고 이야기 했다.
그 무렵 필자는 명리학자 조용헌 선생의
“백가기행”이란 책을 읽던 참이었는데
어느 도예가의 집이 단돈 칠만원으로 지었고
살림이라곤 찻잔 두어개와 차호,소반과
책 몇 권이 전부라는 대목에서
안분지족의 삶에 공감하던 참이었다.

제게 이렇게 좋은 마음 수련법을 알려 주었으니
금액으로 환산한다면 일억원 쯤 할 것 같습니다.
라고 말씀 드렸더니 그저 엷은 미소만 지으셨다.
그 후로 몇 년이 지나 선배의 집에 다시 가게 되었는데
몇 년 전에 일억 이야기는 취소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좀 잘못 생각한 것 같아서요 라고 하면서
이삼억 이상 될 것 같은데요 라고 했더니 파안대소를 하며
고급 병차와 찻잔을 아낌없이 내어 주셨다.
어찌 차를 마시는 일을 돈으로 환산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렇게라도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었다.

차를 마시면서 찻사발 찻잔 차호 찻상 같은 다구들을 조금씩 구입을 한다.
중국의 경덕진잔 일본 이와츄의 무쇠주전자
도예과 교수인 유태근잔 같은 기물을 수집하면서
좋은 그릇을 볼 줄 아는 안목을 기른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분별로 보아야하고
미의식을 갖고 전체적인 것을 보아야 한다.

홀로 여행길에 오르면 경기도 광주에 있는 장작 가마터에 가거나
남쪽의 하동 차 재배지에 들러 차를 마시며 며칠씩 지내다 온다.
이제 찻물을 끓이고 차를 우리는 것이 우리가정의 문화로 굳어졌고
하나의 세리머니가 되었다.
평생을 함께 할 소중하고 고마운 나만의 리테일이 된 것이다.
차를 마실 때면 좋은 습관을 길러준 너털웃음이 선한 L선배가 떠오른다.

사랑하는 것은 천국을 살짝 엿 보는 것이라 했던가!
그 말이 틀림이 없다면 분명 천국에 있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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