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강 조기찬의 '마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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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강 조기찬의 '마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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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6.08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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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라

특히 방직공장과 봉제공장이 많았는데 태평방직, 금성방직, 동일방직, 삼풍산업, 동양나일론, 등이 주류를 이루었고 기타 수다전자, 동화약품, 동아제약등의 공장들과 제지공장들도 많았는데 이곳 공장들은 여성인력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여 여성근로자가 대다수인지라 일시적으로 남녀의 성비가 불균형을 이루어 여자 5명에 남자 1명 정도이다보니 사회적인 문제가 많이 발생함은 물론 시쳇말로 잘생긴 남자의 인기는 끝간데를 몰랐다.

이런 상황에서 자기 부인만을 바라보며 '일편단심 우리 마누라'만을 부르짖던 이 지역의 순진한 남편들도 시선만 돌리면 젊고 예쁜 여성들이 수두룩하게 많아 자기도 모르게 눈을 돌리게 되었다. 

솔직히 말해서 마누라보다도 훨씬 젊고 싱싱한 여성들이 받아만 준다면 눈을 돌리어 마음도 주게 되는 것이 마음씨 검은 남자들의 일반적인 속성일런지 모르지만 조금 마음만 바꾸고 시간만 할애하면 가까운 곳에서 젊고 예쁜- 속말로 싱싱한 여성들이 많아 마누라가 없어도 별로 불편한 점을 모르겠는데 이 고장 특유의 질흙이 많은 토양 때문에 비만오면 질퍽대는 비포장도로와 개발이 되는 곳들이 모두 진흙탕인 환경인지라 장화없이는 불편하다고하여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살 수 없다'는 몹쓸 말이 한동안 유행된 적도 있었다.

과연 이러한 말들이 유행할 정도로 여자들이 많았는가 하는 사례는 영화를 관람하는 인원으로 가늠할 수 있었는데 TV도 잘 보급되지 않은 시절에 오락시설조차 여의치 않아 극장에서 상영하는 영화관람이나 가끔극장의 무대에 올리는 쇼를 관람하는 것으로 오락을 대신하고 문화생활을 동시에 해결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당시 안양에는 3 개의 극장이 있었는데 안양역전의 북측에 위치한 화단극장과 새로 길이 뚫렸지만 아직은 포장이 되지않은 비포장도로인 중앙로에 위치한 삼원극장과 안양극장 등이 그들인데 그중에서 여공들이 제일 많이 몰리는 곳이 화단극장이었다. 

화단극장은 새로 지은 삼원극장이나 안양극장보다는 개관한지가 오래되어 시설은 취약했지만 관람료가 저렴할 뿐만 아니라 조금은 후미진 곳의 허름한 극장으로 시골에서 갓올라온 시골처녀들이 접근하기가 쉬웠으며 또한, 여공들의 취향에 맞는 국산영화를 위주로 상영하였기 때문에 새로 지어 말끔한 삼원극장이나 2층으로 올라가는 안양극장보다는 여공들에게 인기가 높아 휴일등에는 장사진을 이루고 매회 매진을 기록했는데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서는 인원들은 거의 대다수가 여성으로 여공들이 대부분이었는데 당시 안양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화단극장 앞에서 5분만에 애인을 구하지 못하면 바보'라는 할 정도의 말까지 나돌 정도였으니 사정을 알만하지 않는가? 

이렇듯 여성인구가 많아서 역전옆에 위치한 태평방직의 월급날이 되면 안양의 모든 제비와 건달들이 태평방직 정문에 모두 모인다고 할 정도였다고 하니 그 시절부터도 직업적인 제비들과 건달들이 들끓어 여자들에게 기생하여 무위도식하는 부류들이 부지기수라서 그들의 독아에 헤일 수없이 많은 여공들이 시련을 겪었어야만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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