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강 조기찬의 그 시절의 황석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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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강 조기찬의 그 시절의 황석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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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5.28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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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입맛

1. 과거의 입맛2. 밴댕이 속알3. 동수 씨의 어린 시절

30년을 한세대라 하던가?

한세대 전만하여도 인근해의 바다에서 잡히던 고기들이 많기도 하여 생선에 대한 인심도 후하고 값이 싸서 일반인들의 생선구입이 용이 하였다.

그 시절 풍선이나 소형동력선을 이용하고 목화실로 꼬아만든 노끈에 감물을 들이거나 아교를 풀어 성긴 그물을 만들어 사용할 때는 근해에서도 어업이 가능하였고 어족 또한 풍부하여 커다란 수고를 들이지 않고도 대량의 어획량이 보장되었는데 지금은 어떤가? 물론 인구의 증가가 가장 큰 이유이겠으나 문물의 발달과 어업기술의 발달로 질기고 끊어지지 않는 대체특수섬유로 촘촘히 짜서 만든 그물로 바다 밑에서부터 훑어대면서 어족보호를 무시한 무분별한 남획을 일삼고 과소비를 하다 보니 오늘날에 와서는 맛이 좋다는 생선들은 잡히지 않기 때문에 예전에는 생선 취급도 받지 못하여 젓갈용으로나 이용되던 잡어들이 이름 있는 생선을 대신하여 횟감이나 구이용으로 대접을 받는 시대에 이르렀으며 그나마 먼 바다에 나가서 잡아 와야만 하는 시대에 이르렀으니 그렇듯 세월은 지나고 고기의 씨가 마를 정도로 세상은 바뀌었는 것 같다.

흐르는 세월을 탓해 무얼 하겠느냐고 말하겠지만 회귀하는 연어와 같이 사람들도 옛날에 먹었던 부모님이 해주시던 과거의 그 맛을 잊지 못하고 사는 것이다.

동수 씨가 살았던 작은 읍에서 조금 떨어진 방조제에 시설된 부두에는 육지에서 매일 두 번씩의 여객선이 요란한 기관소리를 내며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오고 갔으며 본도와 멀리 떨어진 외딴 섬들과의 연결을 해주는 연락선들도 뱃고동을 울리며 출항과 입항을 하는 부두의 모습들이 정다웠지만 동수 씨에게는 그것보다도 더욱 흥미롭고 풍성한 것은 생선을 잡으러 바다로 나갔다 만선으로 돌아와서 상품용으로 팔리는 이름난 좋은 생선들을 읍내의 생선 도매상들에게 팔아넘기고는 생선으로 팔리지 않는 잡어들을 거의 공짜다 싶은 값싼 가격으로 주민들에게 직접 파는 어선들이 더욱 흥미를 유발 시켰다.

생선배가 들어왔다는 소식을 들은 읍내의 아낙네들이 달구지나 리어카에 대나무로 엮은 사각형의 커다란 대나무광주리나 둥근 대나무광주리를 싣고 잡어를 사러 우르르 몰려오면 평소에는 보기 힘든 농사용 삽이 아닌 사각형의 모래용 삽으로 잡어들을 퍼서 광주리에 담아주는 것도 구경감이었고 일렁이는 파도에 흔들리면서도 삽으로 뜬 고기를 흘리지 않고 퍼 담는 아저씨의 기술도 재미있었지만 돈을 주고받는 아저씨의 걸쭉한 말솜씨는 고기를 사러온 사람들을 자주 웃기는 바람에 다들 배꼽을 잡곤 하였는데 참으로 정겨운 풍경이었고 풍성한 한마당이었다.

값싸게 구입해 온 잡어들을 선별하는데 큰 것들은 두름으로 엮어 널려 말려서 구이용으로 사용하였고 그보다 작은 생선은 찌게용이나 볶음용으로 사용하는데 대나무로 엮은 자리나 초가지붕 위에다 2ㅡ3일쯤 널어 말리면 삐들삐들하게 마르는데 명태덕장에서 겨우내 얼고 녹고하여 바짝 마른 명태보다는 못하지만 그런대로 장기간 보관할 수 있을 정도로 마르는데 광이나 처마 밑에 갈무리 하였다가 텃밭에서 생산된 무우나 감자를 썰어 넣고 볶고 지지면 시골의 식단은 맛깔 스럽고 풍성하기만 한데 이들 생선을 구워 놓으면 어른들의 술안주용이나 어린애들의 간식용으로 이용되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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