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강 조기찬의 지리산-명승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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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강 조기찬의 지리산-명승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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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3.05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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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승고찰

유명한 지리산의 10 경뿐만 아니라 북쪽에서 지리산을 접하다 보면 우선 물속에 비친 자신의 진면목을 보고 자기를 돌아보고 부처님을 친견한다고해서 지어진 이름인 실상사라는 천년사찰이 있는데 전북 남원군 산내면 입석리에 위치한 실상사는 이곳 남원군 출신인 증각대사가 신라 흥덕왕 3년에 세웠다고 하는데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일본의 후지산이 지리산의 천왕봉을 훔쳐보고 있는 형국이라서 우리나라의 정기가 일본으로 흘러들어가 우리나라가 쇠약하게 됨으로 평지인 이곳에 절을 세워 그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세웠다고 하는데 뭐 그렇기야 하겠는가?

예전에도 평지에 절을 세울 수가 있었으니 이곳에 절을 세웠겠지만 모든 사찰이나 명승지에 전하는 전설들이 있는데 비보나 염승적인 이런류의 도선국사와 관련한 풍수사상적인 이야기는 일반인들에게 믿음을 가져다주어 사찰의 위신과 권위를 세우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보이는데 그것도 모자라서 고려시대에는 수철국사가 4,000 근의 쇠를 녹여서 만든 우리나라에서는 제일 큰 3m 가량 되는 거불인 철조여래좌상을 만들어 봉안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후세의 사람들은 이 철불이 고매한 불성의 소유자가 아닌 이제는 무엇이든 꿈꾸고 이룰 수 있을 듯한 야심에 찬 전라도의 호족의 모습으로 보인다고 하는데 어쩌면 그럴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

한국 불교계는 교종과 선종으로 대별되는데 당시 사회를 대표하는 기본의 지배체제와 결탁한 귀족불교인 교종불교에 반기를 들고 일어나서 선을 통해 깨달음을 얻기를 주장하는 구산선문의 하나인 실상사였으니 당연히 지방호족의 후원을 받아 만들어진 철불이기 때문에 다소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왕즉불 사상에서 벗어나 불성을 깨우치면 누구라도 부처가 된다는 자아의 표현으로 지방호족들의 의식세계가 반영되었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지리산 북쪽의 실상사가 선종과 관련하여 고려지방호족의 진면목을 보인 하나의 상징이라면 그 남쪽에는 그 이름도 유명한 화엄사가 있다.지리산 3대 주봉의 하나인 노고단은 지리산의 별칭인 삼신산의 하나인 방장산으로도 불렸는데 삼신산의 산신령인 삼신할머니를 모신 곳이라 하여 노고단이라고 하는 민족의 성지이다.

옛날에는 이곳 노고단에 남악사라는 사당이 있었지만 관리가 부실하여 지금은 화엄사 앞으로 옮겨 갔는데 노고단의 산자락 끝인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에 있는 고색창연한 화엄사는 신라 진흥왕 때 건립되었다고 전해지는데 당초의 사찰은 임진왜란 때 불타고 현존하는 건물들은 조선조 인조 때 벽암선사가 7년에 걸쳐 다시 지었다고 한다.

화엄사내의 국보 67호인 각황전은 지리산의 굳은 맥을 부드럽게 누그러뜨리려고 세웠다고 하지만 그렇지 못했던가 여순반란사건과 6.25 전쟁을 통해 수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했던 아쉬움을 남긴 지리산이기도하다.

화엄사는 지리산을 종주하는 등산객들의 시발점이기도한데 개인의 기량의 차이는 있겠지만 지리산을 종주하는 데는 보통은 5일정도가 소요된다는데 지리산을 오르는 등반객의 50% 정도가 이곳 화엄사에서 오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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