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양명학의 현황과 미래’ 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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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양명학의 현황과 미래’ 조명
  • 조민환
  • 승인 2017.07.17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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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문화원 하곡학 국제학술대회, 한·중 연구자 현대사회에서 하곡학 위상과 활용방안 모색

 시흥문화원(원장 정원철)이 지난 6월 27일 생명농업기술센터 3층 영농교육장에서 제1회 하곡학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했다.

‘한국양명학의 현황과 미래’ 주제로 개최된 이번 학술대회는 한·중 연구자가 함께 모여 현대사회에서 하곡학의 위상과 활용방안을 모색한 자리가 됐다.

  특히 화정동 가래울(추곡)에서 20년간을 살면서 한국정신문화의 뿌리인 신유학 한국양명학을 정립한 추곡 정제두(楸谷 鄭齊斗, 1649-1736)의 하곡학 연구와과 중국 양명학 연구의 교류 성과는 괄목할만했다.

  

식전공연을 시작으로 시흥문화원과 한국양명학회의 학술교류협약서 교환 및 정원철 원장의 개최사에 이어 김윤식 시흥시장, 김영철 시흥시의회 의장, 김세정 한국 양명학회장, 조평략 귀양학원 양명학과 검학연구원장(이하 원장)의 축사가 이어졌다.

 국제학술대회는 김덕균 성산효대학원대학교 교수가 사회를 맡고 지역문화와 양명학이라는 주제로 조평략 원장의 발제와 정종모 서강대 교수의 논평이 이어졌다.

  조평략 원장은 검중(黔中) 지역의 양명학 연구 현황을 일별하고 검중왕학 연구의 회고와 전망에 대해 발제했다.

  이어 육영승 귀양학원 양명학과 검학연구원 부원장의 생활·정신·실천-일상생활 속 양명학이란 주제로 발제, 고재석 성균관대 교수의 논평이 이어졌다.

  중국 연구자들의 발제가 끝나고 ‘하곡학의 현황’과 미래라는 주제로 박길수 강원대 교수가 사회를 맡고 김용재 한국양명학회 부회장이 ‘하곡학 연구 현황과 방향성’을 김윤경 성균관대 교수가 ‘후기 하곡학파의 사상교유’를 정준교 다음세대살림연구소장이 ‘청소년 인성교육, 하곡에게 묻다’를 각각 발제했다.

  모든 발제가 끝나고 정인재 서강대 명예교수가 좌장을 맡고 발제자 및 김세정 한국양명학회장, 정화순 공주대교수, 김민재 안동대 교수가 참여한 종합토론이 이어졌다.

  종합토론을 진행하며 학술대회에 참석한 청중의 질의응답도 함께 진행됐다. 이를 통해 한·중 양국의 양명학 연구자와 시흥시 인문학 발전에 관심 갖는 시민들의 열띤 토론이 이뤄졌으며 한국양명학의 현황 파악과 발전 방향에 대해 모색하는 자리를 가졌다.

  이번 하곡학 국제학술대회는 학변과 존언의 저술로 생명 존중의 정신과 실심을 강조해, 오늘날 현대인의 삶의 질 향상의 단초를 마련한, 한국양명학의 태두 정제두 선생의 사상을 기릴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정원철 원장은 “이번 학술대회를 마치고 곧 다가올 연성문화제에서 ‘양명학적 인성교육’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세미나를 7월 23일 개최할 계획이다. 시흥시가 한국사상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니만큼 많은 시민들께서 관심을 가져주시길 당부한다”며 “이번 사업들이 진행되는데 도와주신 연구자 및 시흥시와 시흥시의회에 감사하다”고 했다.

■ 유학에서의 양명학

 양명학은 중국 송나라 때 주자(朱子)에 의해 확립된 성리학(性理學)의 사상에 반대해 명나라 때 왕양명(王陽明)이 주창한 학문이다.

성리학과는 대립된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육상산(陸象山)의 철학과 함께 심학(心學)으로도 불린다.

 왕양명은 초기에 성리학(性理學)을 공부하다가 주자의 성즉리(性卽理)와 격물치지설(格物致知說)에 회의를 느끼고 육상산의 설을 이어 심즉리(心卽理) ·치양지(致良知) ·지행합일설(知行合一說)을 주창하고 나왔다.

 즉 효는 배우고 익혀서 원리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를 공경하는 자연스러운 마음의 원리를 실현하는 것으로 보았으며 효심과 효행은 구분되지 않는 하나로 인식해 이를 지행합일설로 표현한 것이다.

 마음은 기(氣)이고 마음이 갖춘 도덕성 등의 이치는 이(理)라고 한 주자의 견해에 대해, 만물일체와 불교의 삼계유심(三界唯心)의 입장에서 마음이 곧 이(理)라고 주장하게 됐다.

 이에 따라서 객관세계에 실재하는 사물의 이치를 탐구해 지식을 이룩하는 이론적 방법으로도 대학의 격물치지를 해석한 주자의 입장에 반대하고, 외재사물(外在事物)을 문제 삼으려면 이미 마음이 발동해야 하므로 물(物)을 마음이 발동해 이룩한 사(事)로 해석하고, 밖에 있는 이치의 파악 이전에 파악하는 주체로서 마음의 선천적인 앎의 능력인 양지(良知)를 이룩해 사물을 바르게 하는 방법으로 양명은 확정했다.

 한국은 조선시대의 정제두(鄭齊斗), 계곡(谿谷) 장유(張維), 지천(遲川) 최명길(崔鳴吉) 등이 연구했다.

 특히 정제두는 주자학만이 유일하게 성행하던 시절 이단으로 배척받던 양명학을 위해 횃불을 밝힌 유학자이다.

 이는 그의 스승 백세체, 친구인 민이승, 박심과의 서신을 통해 20여 년간 옛 안산군(현재 시흥)에서 양명학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

 정제두는 왕양명의 심성(心性)에 관한 견해가 <맹자>, <대학>, <중용> 등 그 밖의 여러 문헌들을 보아 주자학과 그 취지가 다를 바가 없다고 했다.

 그는 가래울에 거주하면서 스승에게 자기가 양명학을 오랫동안 공부했으며, 양명학의 심성론이 그릇되지 않았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 주자학 VS 양명학

▲ 시흥의 인물, 정제두

 정몽주(鄭夢周)의 후손으로, 조선에 전래한 양명학을 연구하고 발전시켜 최초로 사상적 체계를 세우고, 이를 바탕으로 경세론을 전개한 조선 후기의 양명학자이다.

 한국양명학의 태두인 정제두 선생은 현재의 시흥시 화정동 가래울 마을(추곡, 楸谷)에서 40세부터 20여 년간 기거하면서 한국 양명학의 핵심 저서인 ‘학변(學辯)’과 ‘존언(存言)’을 저술했다.

 가래울 마을을 떠나 강화로 간 정제두는 그곳에서 경학(經學)에 전념한 것으로 보아 사실상 현재의 시흥에서 한국양명학을 집대성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성리학과 뿌리를 같이하는 신유학이지만 조선시대 이단으로 취급되어 배격했던 사상을 현재의 시점에서 재해석하고, 시흥이 한국 양명학의 종주임을 밝히는 일이 필요하다.

▲ 오늘날 양명학이 왜 필요한가?

 오늘날만큼 철학적인 사유와 해석이 절실한 때는 없을 것이다. 현대 우리 사회는 모든 면에서 서구화가 되었으나, 생각하는 방식은 전통적인 것이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 따라서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창조적 사고가 요구된다. 양명학의 가르침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 사회는 주자학에 입각한 이데올로기가 여전히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정해진 이치(定理)를 진리라고 생각하고, 흑백논리로 상대방을 비판하고 있다. 주자학적 전통이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는 지성(知性)만을 강조했다. 덕성(德性)이란 말은 거의 들어 본 적도 없다. 하지만 덕성이 없는 개발은 자연 파괴와 생명경시로 나아가기 쉬우며, 덕성이 없는 이데올로기는 열광적 추종만 양산할 것이다. 양명학에서 말하는 양지(良知)는 바로 마음의 도덕적 주체인 본심을 가리키고 양심의 다른 표현이다. 

 주자학을 수용한 우리나라는 지나친 도덕지상주의를 강조하였으면 지선(至善)에 이르는 것만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양명학은 윤리적이면서도 심미적인 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어 도가, 불교적 사유도 자신의 철학 속에 수용하였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양명학의 기본적 철학은 양지이다. 마음은 옳고 그름(是非), 좋고 싫음(好惡)을 자율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천리(天理)인데 양지(良知)라고 하는 것이 천리이다. 심이 바로 리(心卽理)이기 때문에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자체가 천리이다. 반면 주자학에서는 양지를 인정하지 않고, 마음(心)은 성(性)과 정(情)이 있을 때 기준을 성으로 본다. 마음은 리(理)를 따라야하기 때문에 자율적 판단이 없다. 마음밖에 있는 리가 예(禮), 외적인 규범으로 보는 것이다. 

 민주화된 사회에서 양명학이 필요한 이유는 바로 시비판단을 내 스스로 한다는 것이다.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 없는 한 우리나라 민주주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양명학에서 양지, 양심에 의해서 판단하는 것이 자기가 알고 행하는 것이 지행합일(知行合一)인 것이다. 

 성즉리(性卽理)에서 리를 따르는 것, 밖에 있는 것을 정리라고 하고 양명학에서는 자기 판단에 의해서 했을 때 모두 화합되는 것을 조리(條理)라고 한다. 

 오늘날 우리는 아직도 주자학적 자세에서 살고 있다. 시흥시는 양명학을 벗어나서 스스로 판단할 줄 아는 고장이 되고 여기서부터 진정한 민주주의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자료제공-시흥문화원

정리 조민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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