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덕의 안경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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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덕의 안경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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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7.14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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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항아리와 반가사유상

한국인의 얼굴형은 광대뼈가 나오고 조금 넓은 얼굴형이 많다. 요즘은 음식문화가 서구화되고 성형수술을 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가름한 얼굴도 늘어나는 경향이지만 이태리나 프랑스산 선글라스를 구입하는 대다수의 고객들은 디자인은 예쁘지만 흘러내리고 볼에 닿아서 불편해한다.

이런 상황을  외국의 안경제조회사에 한국인 얼굴형에 맞게 만들어 달라고 하면 대부분 거절당하는 경우가 많다.

이유가 여러 가지겠지만 우리의 시장규모가 크지 않은 것과 유럽인들의 디자인에 대한 자신감과 우월성에 기인하는 듯하다. 

돈 주고 상품을 수입하면서 이런 고자세 거래에  부아가 난다.

유럽의 안경은 디자인이나 색감 제작기술등에서 우수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의 안경업계가 디자이너를 양성하고 투자를 집중적으로 한다면 그들의 기술과 창조력에 결코 뒤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2009년 영국왕실 소유의 빅토리아 앨버트 미술관에서는 유명인사 5명에게 이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 중 가장 맘에 드는 한 점을 골라보라는 제안을 했다.

요즘 TV에서 인기리에 방영되는 천상의 컬렉션인 셈이다.

그 유명인사 5명 가운데 영화 007시리즈의 마담 역할로 유명한 주디덴치가 있었는데 중세의 도자기나 르네상스의 공예 조각 작품들을 제치고 유독 우리현대 도예가 박영숙의 달 항아리를 꼽으면서 그 감상을 이렇게 말했다.

“하루 종일 이것만 보고 싶을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보고 있자면 세상의 모든 근심이 사라집니다.” 이처럼 서양인의 눈에도  우리조선 대호백자의 소박한 아름다움은 빛을 발했다.

18세기 조선의 유산인 달 항아리는 크기가 40-60 센티미터다. 

둥글고 큰 텅 빈 공간을 한 번에 만들지 못해서 위아래를 따로 만들어 붙인다.

이런 탓에 비정형의 미감이 주는 푸근함과 자연스럽고 소박한 맛이 눈길을 끌어당긴다.

달 항아리는 수많은 작가들의 영감의 대상이며 한국적인 심미감의 원형이다.

도상봉 박서보 강익중 고영훈 김환기 이우환등 수많은 작가들이 달 항아리를 소제로 작품 활동을 해왔다.

수화 김환기는 달 항아리에 대해 이렇게 술회했다.

‘내 뜰 안에는 한 아름 되는 백자 항아리가 놓여있다. 보는 각도에 따라 꽃나무를 배경으로 삼는 수도 있고 하늘을 배경으로 삼은 때도 있다.

몸이 둥근데다 굽이 아가리보다 좁기 때문에 공중에 둥실 떠 있는 것 같다.

희고 맑은 살이 구름에 떠가기도 하고 그늘이 지기도 하며 태양의농도에 따라 미묘한 변화를 창조한다.‘

공중에 둥실 떠 있다는 이 표현이 나는 참 좋다.

여기에서 환영과 환상의 느낌이 든다.

새의 알 같기도 하고 하늘의 달 같기도 하며 임신한 만삭의 배 같기도 하다.

어떤 것을 은유하고 치환해도 다 받아 줄 수 있는 포용과 유연성을 사랑한다.

그렇다. 우리의 손재주와 조형을 다루는 미적 감각은 유럽의 어느 시대 장인들에 견주어 결코 뒤지지 않는다.

신라6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금동반가사유상을 보라.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보다 1200년 이상이나 앞서 제작되었음에도, 미학적으로  더 아름답고 숭고한 아우라 마저 느껴진다. 

해탈의 경지, 신비한 미소, 흐르는 듯 자연스런 옷자락. 이런 걸작들을 시립미술관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볼 기회가 있었다. 

그 당시 반가사유상의 모형을 구입하지 못한 것을 지금도 후회한다.

나의 가슴 깊숙이 자리한 반가사유상은 환영과 영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내가 아는 한 선배는 한국의 모순된 정치 경제 교육 인권 등의 수많은 문제점과 부조리를 성토하며 이민을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국보 83호 금동반가사유상을 수 없이 들여다보면서 이토록 훌륭한 문화적 역량을 간직한 나라라면 분명코 희망이 있다면서 이민 결심을 접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고려불화부터 모노크롬(단색추상화)까지 청자복숭아연적에서 추사 김정희의 호방한 비구상적인 서체까지 우리의 문화 예술의 수준은 세밀함부터 법도에 구속받지 않는 경지까지 이른다. 

분명코 우리민족의 창의성이나 예술성은 세계 어느 민족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달 항아리와 반가사유상은 영원히 나의 마음속에 동거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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