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 두 얼굴 : 요시다 쇼인과 안중근(하)
상태바
청년의 두 얼굴 : 요시다 쇼인과 안중근(하)
  • 시흥시민신문
  • 승인 2019.10.25 13: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당신은 어떤 청년입니까?”
홍헌영 시흥시의원
홍헌영 시흥시의원

신화화(神話化)에 저항하는 역사적 유산

독일 나치에 저항하여 히틀러 암살에 가담했다가 순교한 것으로 유명한 고백교회 목사 디트리히 본회퍼는 그의 저술에서 일본제국을 예로 들어 역사적 유산은 오직 그리스도교적, 서양적 문명에서만 말해질 수 있다는 다소 의문스러운 주장을 한다. 가장 서양에 가깝게 발전한 일본임에도, 당시 제국헌법에 반영된 천황 신화는 동양이 아직 무시간적 신화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서구 그리스도교 문명이 신봉하는 성서 이야기는? 성서 역시 신화라는 숱한 공격에 맞서 그들이 방어하는 논리는 성서가 피해자의 위치에서 타 신화의 불의함을 폭로하는 십자가에 달린 신화라는 것이다. 욕망을 모방하는 질서의 수호를 위해 끊임없이 희생양을 만들고, 이후 그 희생양을 신격화하는 기존 신화의 은폐된 폭력성을 고발하는 것이 성서이다.

이에 동아시아는 신화화에 저항하는 역사적 유산이 특정한 자아(ego)와 종교적 상징 안에서만 가능한 것인지, 그 또한 타자(피해자)를 망각한 무시간적 성찰이 되는 것은 아닌지 제국주의에 대한 반성과 함께 이를 고찰할 필요가 있다.

동아시아의 역사적 유산 : 피해자의 관점에서

일찍이 동아시아 담론에서 한국(조선)은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뒷전이었고, 거의 목소리가 없거나 주로 피해자의 것이었다. 중화사상의 중국에 시달려 약소민족의 처지에 있어야 했고, 일본 제국에 의한 식민지 강요, 해방 후 서구열강에 의한 분단체제를 겪어야 했다. 특히 91년 이후에야 문제로 불거진 위안부 여성과 전후 지난한 삶을 산 재일한인은 동아시아의 피해자적 삶을 보여준다.

오카야마 현 출생 재일한인 운동가 도상태는 자신들의 삶의 주체성을 위해 1)민족적일 것, 2)평화를 염원할 것, 그리고 3)통일을 기도할 것을 요구했다.

1) 민족적이라 함은 동아시아 평화와 화해를 위해서 성급하게 민족과 국가 경계를 허물지 말라는 것이다. 특히 일본군 위안부강제징용 노동자문제에 대하여 일본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국가·민족주의에 의해 왜곡된 지적이라는 주장은 일견 보편적인 통찰로 보이나 실상은 식민주의의 불의보다 당대의 법을 더 신뢰함으로써 가해국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고, 근대 서구와 제국헌법에 더 종속되는 것이다. 피해자를 희생하고 가해국의 책임을 면해주는 탈민족과 아시아연대는 신화에 불과하다.

2) 평화를 염원하라 함은 다시는 동아시아에서 이웃을 침략하여 희생양으로 삼는 시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동북공정, 임나일본부설 등 지나친 국수주의 사학을 통해 주권침해를 구상하지 않는 것도 포함된다. 역사를 지나친 사실 문제로 환원하여 현재적 의미로 나아가지 못하거나, 그것이 타인의 무고한 희생을 정당화한다면 사학의 모습을 띠고 있어도 신화에 불과하다.

3) 통일을 기도하라 함은 분단과 통일의 문제를 한반도에만 한정하지 말고 동아시아 전체의 문제로 생각하라는 것이다. 한중일은 역사적으로 분단체제를 경험했고 현재에도 냉전에 의해 사실상 분단되어 있다. 아직도 외세에 의해 전선이 분할되어 있고 서구와 계몽을 지향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폐쇄적인 민족주의와 특수주의에 기울어져 있다. 통일의 시도 역시 타 민족을 근절하고 말살하는 방식이라면 그것은 신화에 불과하다.

동양평화의 완성 : 피해의 경험에서 보편으로

필자는 동아시아의 중첩적피해자적 시각을 동아시아의 보편으로 삼아 그 삶의 방식을 배워야 한다고 본다. 민족주의와 근대주의를 동시에 극복할 동아시아의 진정한 평화는 피해자의 기억을 공유하는 데에서부터 출발한다. 또한 그동안 축소되고 의미를 부여받지 못한 한반도의 역사를 다층적으로 재조명해야 한다. 이는 모든 폭력적 신화화(神話化)에 저항하는 역사적 유산을 통해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을 완성하는 일이다.

일본의 루쉰 연구가 다케우치 요시미는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一木一草)에 천황이 있다고 말했다. 그리스도교 시대를 열어젖힌 바울은 아브라함은 이스라엘 나라와 율법이 있기도 전에 있던 사람으로 아브라함은 우리 모두의 조상이라고 말했다. 본회퍼는 토크빌이 칭찬한 미국의 신자들의 공동체가 열광주의에 물들어 제국에 굴복할 수 있음을 말했다.

우리도 단군은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고 말하고 시작하면 어떨까? 신자들의 공동체보다 뛰어난 홍익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을까? 단순한 민족주의나 국수주의를 넘어, 그리고 분열을 넘어 한반도와 동양평화를 위해 창조적인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혼()이 필요한 때다. 두 청년, 요시다 쇼인과 안중근의 이야기를 두고 돌고 돌아 독자에게 하는 질문으로 끝맺고자 한다. 당신은 어떤 청년입니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