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시흥시청년기본조례는 왜 제정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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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시흥시청년기본조례는 왜 제정되었는가?
  • 김해정
  • 승인 2019.07.12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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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한 미래 속에서 진정한 자유 찾기

지상 최대의 유혹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시흥에서 청년기본조례를 제정하기 위한 서명운동을 하면서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생각이다. 그 때가 스물일곱이었으니 필자 역시 미래에 대한 압력을 느낄 때였다. 그리고 청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활동한다고 하면서도 남몰래 취직을 위해 스펙을 쌓고 있었다. 필자는 학교에서 전공한 것과 그동안에 그린 미래와는 전혀 다른 진로를 위해 남몰래 분투하고 있었고, 최종 면접에 이를 때쯤 내적 갈등은 극에 달해 있었다. 마침내 원치 않는 것을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굳혔을 때 청년조례 제정을 위한 서명운동이 시작되었다.      

몇 년 전 어느 목사가 이런 말을 했다. 여러 종류의 마귀의 유혹이 있지만, 이 시대 최고의 악마의 유혹은 바로 빵, “생존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수많은 청년들이 나름대로의 뜻을 세워 가치 있는 삶을 살고자 하지만 생존의 두려움 앞에 여지없이 무너진다. 관계망을 끊고 자신이 생각지도 원하지도 않은 일을 위해 분투하게 만드는 힘, 자신의 지나간 과거를 부정하고 스스로 정죄하게 만드는 힘이 여기에 있다. 학자금 대출을 받으며 대학 생활을 하는 청년이나 노량진, 신림 등지에서 취직 준비를 하는 청년, 일찍이 사회에 진출했으나 불안정한 고용에서 벗어나지 못한 청년 모두 이러한 공포 속에 살아간다   

믿음 없는 죄

청년조례 제정을 위한 서명을 받을 때 조례 취지에 공감하는 분도 많았지만 그럴 시간에 공부하라고 핀잔주는 분도 많았다. 전쟁에 참전하셨던 한 어르신은 자신의 젊은 시절을 이야기하며 요즘 청년의 나약함을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시대의 청년이 느끼는 불안은 당장의 어려움보다도 앞으로 이 어려움이 더 나아질 거라는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데서 나온다. 노력해도 자신의 인생의 조건이 더 나아질 거라는 희망이 없다면 어려움을 극복할 능력이 부족한 것보다 더 치명적인 냉소, 즉 자신과 사회에 대한 믿음을 잃는 상태에 빠질 것이다. 눈에 보이는 전쟁과는 또 다른 냉전 속에서 청년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힘이 이 가능성 안에 있다. 현 청년에게 믿음 없는 것이 죄라면 죄다      

청년만의 문제가 아니다

청년의 문제는 지역사회의 위기로도 이어진다. 청년이 경제활동을 위해 대도시로 이주하거나 가정생활을 포기하면 그 피해는 지방에서부터 나타나기 때문이다. 국내에 젊은 여성인구가 노인인구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지역이 80곳이나 된다. 출산보다 고령화가 더 급속해 장차 소멸이 예상되는 지역이다. 시흥 역시 전체 인구는 증가하고 있으나 정착을 해야 할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의 젊은 인구는 감소하고 있다. 이렇게 지자체의 젊은 인구가 줄면 그 피해는 서울과 같은 중심부에 돌아간다. 가뜩이나 물가가 높아 출산율이 떨어지는 대도시에서 지방으로부터 유입되는 인구마저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역에서의 청년의 자립과 정착은 지역의 경쟁력뿐 아니라 사회 전체를 위해서 매우 중요한 문제다.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라도 청년들에 대한 지자체의 서비스가 필요한 것이다.      

새로운 선택을 해야 할 때

청년들도 새로운 선택을 해야 한다. 청년조례를 시의원 발의가 아닌 주민발의로 제정한 것은 청년조례 제정의 과정 자체가 지역주민이 함께한 운동이 되게 하기 위함이었다. 다행히도 주민의 2%를 훨씬 웃도는 14,373명의 서명을 받아 조례가 제정되었고, 덕분에 지역사회에서 청년문제에 대한 대책을 세우는 참여의 장이 열리게 되었다. 이러한 가운데 청년들 역시 지역을 기반으로 지속가능하고 대안적인 삶의 계획을 세울 필요가 있다.     

지자체도 청년을 위한 독특한 정책을 마련하겠다는 결단이 필요하다. 이미 여러 지자체에서 청년을 위한 조례와 정책들이 나오고 있고 일부는 청년기본법을 포함하여 중앙에서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알고 있다. 어쩌면 우리나라의 지자체와 청년 모두 자립적인 주체로 거듭나기 위한 이행기에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는지 모른다. 그럴수록 청년과 지자체가 힘을 합하여 이전과는 다른 시각과 문제의식으로 청년문제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조례가 만들어지고 청년정책이 만들어진다고 해서 청년들이 느끼는 불안이 하루아침에 사라지진 않는다. 다만 이 현실이 당장에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면, 그리고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바라는 길이 점점 좁아져 누군가는 그 길을 포기해야 한다면, 누군가는 전혀 다른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필자는 지금의 청년이 사회를 작게라도 변화시키려는 역동적인 참여의 길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그것이 사업의 길이든, 정치의 길이든, 대안적인 주거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든 말이다. 그러한 청년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필자는 다른 아흔 아홉 명보다 우선하여 도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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